월요일, 8월 04, 2008

인터넷과 익명성

쇠고기 문제로 호되게 촛불에 데인 정부가 드디어 인터넷을 향한 칼을 빼들었다. 현재 하루 접속건수 20만 이상의 대형 포털등에서만 실시하고 있는 "제한적 본인 확인제"를 하루 접속 10만 건 이상의 사이트로 늘리겠다는 계획인 모양이다(연합뉴스). 게다가 인터넷 사업자에게 게시물을 모니터링하는 의무를 부과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정부의 말로는 소위 악플이라는 무책임한 댓글을 예방함으로써 건전한 인터넷을 구현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하지만, 국민의 입에 재갈을 물리는 언론통제라는 비판도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여하튼 그 목적이 어떻게 되었건 간에, 이런 식으로 인터넷의 익명성을 통제하겠다는 발상은 과연 정부가 인터넷과 익명성에 대해 과연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는가 하는 의구심을 자아내게 한다. 솔직히 성급하고 지나치다. 일면 시대착오적이기까지 하다. 왜냐하면 익명성은 민주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꼭 필요한 장치 중 하나일뿐 아니라 인터넷이 가지고 있는 힘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이놈의 미국 사례는 될 수 있으면 안쓰려 했는데 비슷한 국내 사례를 찾기가 힘들었다. 검색 실력이 짧은 건지... 1995년 미국 대법원은 익명성의 가치에 대한 중요한 판결을 하나 내렸다. 비록 온라인이 아닌 오프라인 상의 사건(McIntyre vs. Ohio Election Commission)에 대한 판결이지만 참 멋진 판결이다. 판결문의 요지를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익명성은 민주적 여론형성을 위한 필수적인 장치로서, 비판적인 다른의견을 가진 소수의 신원을 감출 수 있게 해주는 "다수의 횡포에 대한 방패"라는 것이다. 아래에 원문에서 발췌한 내용을 조금 인용한다.

Protections for anonymous speech are vital to democratic discourse. Allowing dissenters to shield their identities frees them to express critical, minority views . . . Anonymity is a shield from the tyranny of the majority . . . . It thus exemplifies the purpose behind the Bill of Rights, and of the First Amendment in particular: to protect unpopular individuals from retaliation . . . at the hand of an intolerant society.

그런데 이렇게 익명성이 오프라인 사회에서 존중되어야 할 가치라면 왜 우리는 동일한 가치를 온라인상에서 제한하려고 하는 것일까? 우리나라는 미국이 아니니까? 미국 대법원은 OIE와 같은 국제기구가 아니라서? 온라인이 쉬운 복제와 빠른 전파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들만으로는 익명성에 대하여 오프라인과는 다른 기준을 적용할만큼 충분한 이유는 되지 못한다. 물론 인터넷의 익명성이 다른 모든 가치에 우선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무제한으로 허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중국처럼 아예 인터넷을 내놓고 통제할 생각이 아니라면 아무리봐도 이번 정부의 계획은 민주적인 여론 형성을 위한 장치로서 익명성의 가치를 과하게 평가절하하고 있는 듯 하다. 만약 정부의 논리대로라면 일정부수 이상을 발간하는 신문들 역시 모든 신문기사의 취재원을 실명으로 밝혀야 할 것이다. 도대체 거의 매일 신문에 등장하는 "청와대 핵심관계자"가 누구인지...

사실 인터넷의 익명성이 가져오는 폐해와 규제의 필요성에 대한 문제는 전세계 Net를 달구고 있는 뜨거운 이슈 중의 하나이다. 익명성이란 방패뒤에 숨어 인신공격적인 글이 난무하고 심지어 이로인해 청소년이 자살하는 비극까지 있었다. 또 인터넷은 마약, 납치, 테러 등 각종 범죄자들에게는 훌륭한 범행도구이며 포르노와 저작권을 위반한 불법 자료 유통의 온상이기도 하다.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부작용만을 보고 인터넷에서의 실명사용을 강제한다면 그것은 빈대 잡으려고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다. 마치 고속도로에서 과속하는 자동차때문에 고속도로를 통과하는 모든 차량에 최고속도를 제한하는 장치를 부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모든 것에는 댓가가 따른다. 그리고 인터넷에서의 익명성은 아직은 그 댓가보다 효용이 크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는 의견이라 할지라도 언론의 자유에 따른 당연한 결과이며 대가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설령 일부 의견표시가 지나쳐 명예훼손 같은 불법행위가 된다고 해도 다른 의견을 말하는 것 자체를 제한하거나 곤란하게 한다면 그 것 또한 불법이다. 만약 인터넷에 게시된 의견이 법령이 허용하는 범위를 넘는다면 해당 법령에 따라 처벌하면 되는 것 아닌가? 여기서 익명이면 어떻게 "악플러"를 찾을 수 있겠냐는 70년대 컴맹 수준의 "악플"은 제발 사절이다.

과연 익명성은 인터넷에 전혀 도움이 안되는 악의 축일까? 하기는 선악이라는 개념이 전혀 주관적인 것이긴 하지만... 2001년에 만들어진 유명한 온라인 백과사전인 wikipedia는 인터넷의 익명성이 가지고 있는 긍정적인 힘을 여실히 보여준다. wikipedia는 누구라도 글을 올리고 수정할 수 있으며--물론 원한다면 익명으로--2008년 4월 현재 253개 언어로 천만 건이 넘는 방대한 자료를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누구나 익명으로 글을 쓰고 수정할 수 있는 시스템때문에 wikipedia가 태생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바로 정확성과 객관성이다. 때문에 어떤 이들은 wikipedia를 인터넷의 익명성이 가져오는 폐해의 사례로 들기도 한다. 일부 대학에서는 wikipedia의 자료를 학문적 목적의 레퍼런스로 쓰는 것을 금지하기도 한다. 하지만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사실은 놀랍게도 wikipedia의 자료들 중에서 일부 정치적으로 민감한 자료를 제외한 대부분의(most) 자료들이 매우 높은 질과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객관성을 위해 이건 내 주장이 아니라는 사실을 밝혀둔다. 미국 샌디애고 대학 교수인 Sara Baase가 그녀의 책 A Gift of Fire에 쓴 말이다. 그래서 wikipedia의 자료를 학술논문의 레퍼런스로 쓰지 못하게 하는 교수들도 대부분 wikipedia의 자료가 리서치의 좋은 출발점이라는 것에는 이견이 없다.

만약 wikipedia가 글을 쓰기 위해 실명 또는 신원을 증명할 수 있는 자료를 요구했다면 현재와 같은 방대한 자료를 축적할 수 있었을까? 아닐 것이다. 직접적인 증명은 될 수 없겠지만 흥미있는 비교를 한번 해보자. wikipedia의 설립자 중 한사람인 Larry Sanger는 2007년 3월 wikipedia와 전혀 다른 성격의 온라인 백과사전인 citizendium을 출범시킨다. 하지만 citizendium은 wikipedia와는 달리, 자료를 올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료제공자의 실명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인터넷에 게시가 되기 위해서는 전문가의 최종검토를 거친 후에야만 가능하다. 금방 감이 오듯이 wikipedia의 정확성과 공정성 한계를 극복해 보고자 하는 정책이다. 그러나 출범 1년 5개월이 지난 2008년 8월 현재 citizendium이 보유하고 있는 자료의 건수를 한번 살펴보자. 7,600건이다. 참고로 2007년 한해에만 wikipedia에 올라온 자료 59만 건에 비하면 약 100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물론 자료건수만 가지고 두 사이트 중 누가 낫다고 비교할 수는 없다. 또한 익명성이 자료 건수를 결정짓는 유일한 요인이 아니라는 것도 안다. 하지만 얼마나 다양한 분야의 얼마나 많은 자료를 보유하고 있는 지 여부가 그 사이트의 유용성, 나아가서는 그러한 사이트들이 구성하는 한 국가의 인터넷 유용성을 결정짓는 중요한 기준 중의 하나라는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익명성이 축적되는 자료의 양에 영향을 미치는 결정적인 요인 중의 하나라는 사실 또한 마찬가지다.

개인적 생각으로는 정부가 이런 식으로 성급하게 규제 입법을 추진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시장(Market)이 이 문제를 해결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 생각된다. 실제로 아마존이나 ebay같은 곳에서는 이 문제를 규제입법 없이도 벌써 효과적으로 다루고 있다. 왜냐하면 이 문제는 그들에게 생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사이트에 욕설과 거짓이 난무한다면 조만간 고객들이 떠날 것임을 잘 알고 있다. 고객의 익명성 보장과 안전성 확보라는 균형을 맞추지 못한다면 결국은 자신들이 시장에서 퇴출될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때문이다. 그들에게는 자신들의 사이트 성격에 따라 고객들이 인정할 만한 합리적인 수준에서 익명과 실명의 균형을 유지해야 할 필요와 동기, 그리고 이익이 있다. 자연스럽게 "합리적인 수준이라는 가격"은 시장의 수요와 공급의 원칙에 따라 정해질 것이다.

인터넷에서 익명성은 현실세계에서만큼 존중받아야 할 가치가 분명히 있다. 그리고 그 익명성을 정부의 계획대로 통제하려 한다면 우리는 얻는 것보다는 잃는 게 많을 것이다. 그 잃는 게 당장은 경제적 이득을 가져다 주는 실용적인 것이 아니라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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