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일, 12월 19, 2006

2002년 5월 어느날 퇴근 전철에서

컴퓨터를 뒤적거리다 한 4년 전쯤에 적어 놓은 글을 찾았습니다. 원래 이글은 아내가 나중에 서울시청 가족참여 이벤트인가 뭔가 하는데 제출해서 조그만 상도 받고 했더랬습니다. 지금 다시 읽어봐도 현실이 별반 나아진게 없는 게 같아 씁슬하기도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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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5월 어느날 퇴근 전철에서


퇴근시간 무렵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아내는 일 때문에 오늘 늦는 다는 군요
얼마전 복직한 임시 근무처가 바쁜 모양입니다.

나 역시 매인 몸이라 바로 퇴근이 힘들어 8시가 넘어서야 사무실을 나올 수 있었습니다
안국역에서 전철을 타기 전 집에 전화를 했습니다.
아빠야? 창언이가 전화를 받는군요.
아빠가 엄마랑 같이 와야 돼!!!!
순간적으로 뭐라 대답이 안나오는 걸 뭘 먹고 싶냐는 물음으로 대신합니다.
초코릿이 먹고싶다네요.
마음이 짠해집니다. 민지 소리는 전화기로 들리지 않습니다.

종로3가에서 상일동행 5호선 전철을 갈아탑니다.
갈아탄 전철을 돌아보니 늦은 시간인데도 학생들 말고도 아내 또래의 여자들이
많습니다. 전에는 미처 몰랐던 일이네요.

전철이 청구를 지납니다.
아내 생각을 합니다.
얼마나 애들 생각에 속이 탈까요?
나는 한편 아내가 복직한 것이 마땅찮습니다.
아내의 심정을 모르는 바 아니면서도 그냥 감정적으로 그렇습니다.

별 뾰족한 수가 없는 제 자신에 대한 염증 같은 것도 생기고요
오히려 후자 쪽의 자책감이 강하겠네요.

녹음기를 꺼내 이어폰을 귀에 꽂습니다.
현재로선 이게 우리 삶의 돌파구입니다.
아내가 애써 일깨워 주지 않아도 나는 잘 알고 있습니다.
아침에, 그러니까 한 12시간 전에 우리는 건너편 노선에 함께 있었습니다.
고덕동에서 출발해 그러다 아내는 을지로4가에서, 나는 종로3가에서 내려
직장으로 향해 12시간이 지난 지금 나는 다시 반대편 노선위에서 흘러가고 있습니다.
아내는 아직 돌아올 시간이 못된 모양이고요

전철이 아차산을 지납니다.
귓가로 he wants to make his house wormer 라는 문장이 건성으로 흘러갑니다.
창언이는 어쩌면 벌써 잠들어 버린게 아닐까?
걱정 아닌 걱정이 듭니다.
할머니에게 미안한 마음을 금할 길 없습니다.
전철이 오늘따라 더디게 느껴집니다.

아침에 출근길에 아내에게 인생이 고달프다고 하소연 한 게 생각납니다.
아내는 동조도 아니고 호응도 아니지만 애써 나를 달래주려 이런 소리 저런 소리를
했습니다. 아내가 고맙다는 생각이 듭니다.

전철이 굽은다리를 지납니다.
두 정거장 있으면 창언이와 민지를 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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