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6시쯤 뇌성 소리에 잠이 깼습니다. 창문을 열어보니 비가 쏟아집니다. 호텔에서 간단히 아침을 먹고 우산을 들고 온 가족이 마을 산책에 나섰습니다. 저녁에 내린 빗물이 멀리 보이는 바위 틈 사이로 폭포가 되어 흐르고, 마을을 가로지르는 냇물도 수량이 크게 늘었습니다. 이른 시간인지 동네 사람들은 많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름답고 평화롭습니다.
오늘은 체르마트(Zermatt)에 도착해 산악열차를 타고 고르너그라트 전망대에 올라 알프스의 영봉 마테호른을 보는 일정입니다. 체르마트는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차량의 출입을 제한하고 있어 버스로는 갈 수 없고 중간에 태쉬(Tasch)라는 곳에서 내려 셔틀 기차를 타야 한다고 합니다. 태쉬에 도착할 때 쯤에는 비가 멈췄습니다. 운이 좋았지요. 가이드의 조크를 빌리자면 일행 중에 작두 타는 사람이 있는 듯.
체르마트에 도착해서 점심으로 중국식당에서 볶음밥을 먹었습니다. 민지는 모르겠지만 아내와 저에게는 아직까지 빵보다는 밥이 낫습니다. 그리고 미리 사간 고추장이 효자 노릇을 톡톡히 했습니다. 아내는 옆자리의 노부부가 챙겨온 고산병 약을 먹는 걸 보고 예상치 못했던 고산병에 대한 걱정 및 엄살(?) 시작.
점심 후에 간단히 체르마트 시내 구경을 마치고 드디어 해발 3,089m에 위치한 고르너그라트(Gornergrat) 전망대까지 오르는 산악열차(Gornergrat Bahn)를 탔습니다. 날씨는 언제 비가 왔나 싶을 정도로 완전히 개었습니다. 산악열차 철도는 일반 철도와 다르게 두 레일 사이에 톱니바퀴 모양의 레일이 한 가닥 더 달려 있는데, 이걸 이용해 해발 약 1,600m의 체르마트로부터 전망대가 위치한 3,089m까지의 경사를 약 30분 동안 천천히 안정적으로 올라갑니다. 체르마트에서 고르너그라트 전망대 까지 4개의 간이역 중 3번째 리펠베르그(Riffelberg)역을 지나고부터는 눈이 쌓이 산봉우리들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더군요. 그리고 아내의 고산병 걱정도 이때쯤 거의 사라졌고요.
최종 목적지인 고르너그라트 전망대에서 바라본 알프스는 정말 장관이었습니다. 빙하와 흰눈 쌓인 웅장한 봉우리들이 보는 사람을 압도합니다. 잠시나마 이번 여행 패키지에 융프라우가 빠져 있다는 아쉬움—근데, 스위스하면 융프라우 아니여?--을 아주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습니다. 굳이 전에 보았던 록키와 비교하자면 록키가 거대하고 거친(Wild) 느낌이라면 알프스는 상대적으로 날카롭고 빼어난 느낌입니다. 록키가 지리산이라면 알프스는 설악산? 그리고 슬프게도 눈에 보이는 알프스의 풍경을 온전히 사진으로 담기에는 제 핸드폰 카메라가 너무 늙었다는 걸 인정해야 했습니다. 여행 전 미리 핸드폰을 좀 더 좋은 걸로 바꾸지 않은 게으름을 탓하는 수 밖에요…
내려오는 길에 3번째 리펠베르그역에서 내려 두번째 역인 리펠알프까지 트래킹을 한 것도 아주 좋았습니다. 이건 여행사를 칭찬해 줘야할 부분입니다. 정상의 구름이 걷힐 듯 말듯한 마테호른을 보면서 약 1시간 정도를 걸었던 것 같습니다. 앞으로 아내와 저, 그리고 민지까지 파라마운트 사의 영화를 볼 때면 지금 이 순간을 떠 올리겠지요. 이 알프스 트래킹이 아내에게는 아마 이번 여행에서 가장 좋았던 코스가 아니었을 까 생각됩니다.
저녁 식사는 예약된 시간 보다 약 40분 정도를 기다려--식당 안에서 음식을 기다린 시간 까지 합하면 1시간은 된 것 같습니다-- 체르마트 시내에 있는 이탈리아 식당에서 스파게티와 닭고기 요리를 먹었습니다. 솔직히 수준 이하의 음식이었습니다. 1시간 정도 알프스 트래킹을 마친 후의 시장기에도 불구하고 남기고 싶을 정도로 말입니다. 샐러드 바 요금 조차도 식사요금에 포함되어 있지 않아 옆 테이블의 일본 관광객들이 접시를 들고 왔다 갔다하는 걸 바라보기만 해야 했고요. 다른 음식을 시킬까도 생각을 했지만 여행팀의 다른 사람들에게 예의가 아닐것 같아 결국 대충 먹고 나와 다른 곳에서 다시 먹기로 했습니다. 민지는 스테이크, 나는 맥주와 뭘 먹었더라? 쏘세지?
호텔은 이번 여행 중 가장 좋았습니다. 외양은 나무와 빨간 제라늄 꽃 화분으로 장식이 된 스위스 전통 가옥 형태였지만 내부는 최근에 리모델링을 한 것인지 현대적인 느낌에다 가구나 시설도 모두 새 것이었습니다. 방안에 컵라면 냄새가 약간 밴게 미안해질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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